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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스토리

2022농림수산식품부 장관상 이마태오

2022년 이 마태오 수상자

2022년 창업성공스토리

이 마태오 KMT(Korea Malaysia Trading) 회장


말레이시아-부친 따라 정착, 창업, 무역으로 도전!


충남 아산에서 1968년 태어난 이 마태오 KMT(Korea Malaysia Trading) 회장은 천안중앙고를 졸업했다. 말레이시아 국영기업에 근무하던 부친을 따라 1987년 말레이시아로 이주했다. 건설회사 주재원이었던 부친은 싱가포르 그리고 브루나이 왕국을 건축 할 당시 총감독을 맡았으며, 중동과 말레이시아 문교부 산하 기업에서 구매와 교육 자재 진흥사업을 맡았다. 이러한 영향으로 일찍이 해외에 관심이 많았다.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서다야 대학에서 비즈니스 컴퓨팅을 전공하고 군 복무를 위해 귀국, 군 시절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대우 김우중 회장의 저서를 읽고 감명을 받아 무역업에 승부를 걸고 한국제품을 수입해 말레이시아에서 판매했다. 수 많은 한국 상품이 해외에서 인기가 있을 거란 확신 때문에 희망 가득한 생각으로 제품들을 찾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자동차 시트커버와 차량 액세서리 제품들이 되겠다 싶어 1994년 창업하고 자동차 액세서리 전문 오퍼상을 시작했다. 커다란 샘플가방을 들고 3개월간 도·소매상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영업을 한 결과, 4만 불 정도의 물량을 몇몇 기업으로부터 주문 받았다. 하지만 특별한 준비없이 서둘러 회사를 차리고 무작정 영업부터 시작했던 까닭에 주문받은 제품을 당장 수입 할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관광 안내와 통역을 병행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던 때여서 먹고는 살았지만, 사업을 할 만큼의 자금은 충분하지 못했다. 바로 시작한 회사에다가 외국인에게 자금을 융통해 줄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신용장(LC)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철물 수입상을 하는 친구 삼촌을 찾아가 주문장(P/O)을 보여주며 LC를 부탁해서 그 회사 이름으로 첫 제품을 수입하게 되었다. 자금을 긁어모아 상가 2층에 조그마한 창고를 얻어 첫 컨테이너를 받던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다. 어렵게 주문한 컨테이너가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도착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하고 믿어지지 않아서 만져 보고 또 만져봤다. 직원도 없던 터라 주변의 친구들에게 일당을 주기로 하고 컨테이너에서 제품들을 하역해 상가 2층 창고로 밤새 올렸는데 물량이 많다 보니 창고 공간이 부족했다. 할 수 없이 남은 물량은 컨테이너에 보관했다가 다음 날 바로 배송을 보낼 생각으로 컨테이너에 자물통을 채우고 퇴근했다. 다음 날 아침 희망찬 마음으로 컨테이너를 열려고 보니 전날 잠가둔 자물통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빨라진 심장박동으로 서둘러 문을 열어보니 말 그대로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비어 있었다. 첫 주문 컨테이너 제품 중 백 박스가량 물품을 도둑맞은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만난다고 하지만 시작 하자마자 생긴일 이어서 더욱 뼈아픈 경험이었다. 다행히 일부 물량이어서 나머지 제품들을 문제없이 공급하고 1개월쯤 지난 후에 추가 주문을 받으면서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조금씩 물량이 늘어나고 규모가 나날이 커졌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경쟁제품이 나오게 되고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동차 시트커버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 시트커버에 대한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반가공 제조까지 성장하게 되었다. 직원도 20여 명 정도로 늘어나고, 거래처도 늘고 주문도 계속 증가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제조공장까지 진행했던 1997년 4월, 태국에서 시작된 외환위기의 여파가 말레이시아까지 넘어와 첫 번째 사업은 위기를 맞고 결국 무너졌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했다. 첫 사업의 실패로 얻은 교훈을 발판 삼아 아무리 큰 경제 위기가 와도 먹는장사는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식품을 조사해보니, 한국식품의 가능성과 잠재성이 크다는 것을 파악하고 식품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새로 시작한 식품 유통업은 처음엔 물량이 적어 두세 달에 한 컨테이너 수입으로 시작하면서 유통 체인점들 위주로 상권을 넓혀갔다. 그러던 중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 줬다. K-푸드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아지고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은 프리미엄이 붙기 시작했다.


월드컵, 한류, K-food 인기 급성장 발판


식품 유통업에 진출할 때만 해도 한국식품이 낯설었다.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식품을 알리는 데 집중했다. 일본계 백화점인 이세탄에 한국 라면을 팔아보려고 납품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몇 개 팔리지 않았다. 중국계 말레이시아 화상(華商)들과 경쟁해야 하는 식품 유통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제품 선정과 가격 모두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수 없이 매장을 찾아다니며 제품 진열을 파악하고 현지 제품보다 열 배 더 노력해야 매대에 우리 제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이후 매장에 조금씩 자리를 넓혀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노력하던 중 한 백화점에서 ‘코리안 푸드 페어’ 제안을 받고 처음으로 큰 행사를 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개최되던 때였다. 오후 4시쯤 백화점을 찾는 고객이 시장기를 느낄 때 직접 라면을 끊어서 무료로 시식하도록 했다. 낯선 한국인이 끓여주는 색다른 한국 라면 냄새에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행사용으로 준비해 간 라면 몇 박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이 났다. 시식 행사를 멈출 수 없어서 납품했던 매장의 라면을 되사서 끓여줬다.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4강에 오른 것처럼 한국식품의 판매도 행사 2주 동안 이 백화점에서 1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대성공을 이뤄 2002년 월드컵은 이 회장에게도 기억에 많이 남는 해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 식품전은 20년이 지나도록 말레이시아의 유명 슈퍼체인과 쇼핑몰들에게 한국 식품전 행사가 방문객도 많이 끌어모으고 매출을 잘 올린다는 행사로 자리 잡아 매년 한국식품전 행사를 열게 되었고 말레이시아 전역의 마트와 식료품점에 대부분 한국식품 진열대가 보편화되었다. 초창기에는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한국식품을 찾는 이가 많지 않았다. 지금은 생활 수준이 높아진데다 우리의 국격이 높아지면서 한국식품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세계적으로 한류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한식에 대한 인기는 나날이 높아져 갔고 말레이시아에서도 한국식품을 선호하는 마니아층이 생겼다. 최근에는 한국산 밀키트를 비롯해 소스와 드레싱 및 조미료 등이 온-오프라인에서도 판매되고, 조미김, 홍초, 라면과 만두를 비롯한 한국산 고추장과 양념의 매출이 상승하고 할랄 인증획득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현지화 전략과 입맛의 장기화 그리고 사업 다각화

2002년을 기점으로 승승장구하던 매출이 2004년부터 2년간 제자리 걸음으로 정체됐다. 화상(華商) 중심의 유통구조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새로운 변신이 필요했다. 화교가 유통을 장악한 상황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로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직원 특화 채용으로 새로운 현지화 전략을 선택했다. 말레이시아 중국계 직원들을 채용하고 그들에게 영업을 맡겼다. 1년 후 화상들의 반응이 달라졌고 매출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사업 초기 연매출액은 1억 원 미만이었으나, 현지화 전략을 통해 현재는 500억 원대로 성장했다. 말레이시아 전역의 유통망에 한국식품을 공급하고 있지만, 식품 사업이라는 게 갑자기 성장할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어서 장기전 전략이 필요했다. 10대에 처음 한국식품의 맛을 접한 뒤 세월이 흘러 30대가 되고 가정을 꾸릴 경우 온 가족이 한국식품을 접할 수 있도록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도매 위주의 한국식품에서 최근에는 한국형 식자재 마트와 같은 중형 마트와 소매 마트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이 회장은 단일 사업에만 집중 투자하며 한 분야에 전념하기보다 주 사업 이 외의 다른 분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는 경영전략을 펼쳐 나갔다. 2012년 ‘미서울’이라는 브랜드로 패션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알로에 계통 미용 제품과 한국산 피부관리 제품 및 기초화장, 댕기머리 샴푸 등을 말레이시아 전역 유통망에 공급하고 있으며, 온라인과 홈쇼핑 채널을 통한 판매도 시작했다. 2014년 K-에코마트사를 창업, 소매 체인점인 K-Market 일곱 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2년 10월에는 800평 규모의 K-플러스 푸드마켓을 오픈했다. 이와 더불어 물량배송을 자체적으로 감당하다 보니 한계에 부딪히면서 외주를 주기에는 비용부담이 커서 본사 창고와 배송팀을 분리하여 물류 전문 KORJAYA사를 설립하고, 외주회사보다는 저렴하게 그리고 본사 업무처럼 더욱 책임감 있게 운영하며 사업 전문화를 도모하게 되면서, 지금은 계열사 일곱 개를 두고 물류, 홈쇼핑, 외식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29년 전 말레이시아에서 식품 유통업을 창업한 이래 그는 현지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국식품 유통 체인 KMT 그룹을 운영하면서 직원 300여 명을 두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시장기회의 발견과 중상층 공략의 차별화된 전략

오늘의 KMT 그룹 성공의 힘은, 경험은 삶의 나침판이 된다는 이 회장만의 말레이시아 시장 파악과 그 속에서 찾은 기회의 발견이었다. 말레이시아만의 대외 무역 의존도와 식음료, 생필품 등 수입품에 대한 높은 선호도가 일반화 되어있는 시장성을 파악하고, 이에 맞춰 한국의 대표적인 상품과 상위 시장 점유율 그리고 인지도 높은 한국제품 위주로 상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현지 식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강 요소가 고려된 한국상품의 고품질과 맛을 강조한 차별화된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식품은 현지 제품에 비해 품질과 가격이 높아서 성공적인 시장 진출을 위해 중상층을 겨냥한 구체적 타겟 시장을 선정하고 중상층 소비자들은 정보 습득력과 정보 교류가 빠르고 다양한 요구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중상층 위주로 운영되는 유통 거래처들과 빠르게 사업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사업 방향이 성공을 이끈 주요 전략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할랄 인증으로 돌파구 마련


말레이시아에서 식품 유통을 하는데 가장 큰 장애요인은 할랄(Halal) 인증이었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슬람을 믿는 신자들이 먹고 쓸 수 있는 모든 제품을 통칭한다. 예컨대 무슬림 신도들은 돼지고기는 물론, 라면수프에 돼지고기 분말이 들어가는 것도 일절 먹지 않는다. 할랄 허브 국가를 목표로 하는 말레이시아는 할랄 법(Halal Act)의 시행에 따라 전 세계 유일하게 정부 기관 내 할랄청을 두고 있다. 국가 할랄 기관인 ‘자킴’(JAKIM)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제품과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들을 따로 진열, 판매해야 한다. 전체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무슬림의 한류 문화와 한국식품에 관한 관심과 수요가 높은 말레이시아 시장에서 이 회장이 취급하는 대부분 한국제품은 자킴의 할랄 인증을 받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2004년부터 주요 한국식품 제조기업에 할랄 인증의 필요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또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와 공조를 통해 대통령 국정 수행 과제 속에 한국식품 세계화에 따른 할랄 산업발전 및 지자체의 할랄 산업 지원책을 수립, 추진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앞장섰다. 농심 신라면의 할랄 인증을 비롯하여 종갓집(김치), 빙그레(우유), 롯데(과자) 외 다수의 중소기업 식품들이 할랄 인증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상품에 대한 전문성과 지식을 바탕으로 말레이시아 시장을 개척하고 현지 시장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전략으로 말레이시아 내에서는 KMT 그룹을 통해 현지 소비자들이 한국식품에 대해 알아가는 시장문화를 만들고 제품에 대한 인지도를 확대해 나갔다. 이렇게 늘어나는 물량 증대를 통해 공급원가를 낮추면서 중하층 소비자들에게까지 다가 갈 수 있는 경쟁력이 있는 가격대로 시장 확대를 추진하며, 전 세계 인구의 25%인 약 19억 명의 이슬람 시장에 한국 상품이 진출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12년 대통령 산업포장, 2022년 농수산식품 장관상을 받았다.


한국인 정체성 함양과 지역 가치 발전으로 자랑스러운 한국인

이 마태오 회장은 2020년 10월 31일, 말레이시아 말라카 주(州) 최고통치자 툰 모히드 알리 로스탐 왕으로부터 백작(Datuk) 작위를 수여받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사회 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백작 작위 수여의 경우, 외국인이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한국인으로는 권병화 세계한인무역협회 명예회장(2006년)과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2009년)이 백작 작위를 받았다. 이는 다양한 종교와 다인종 배경을 가진 말레이시아 시장에서 한국 식료품의 저변 확대는 물론 무슬림 시장을 위한 할랄제품 생산의 중요성을 대한민국 식품업계에 알리는 융합 선구자의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 마태오 회장은 무슬림 소비자들의 삶 속에 한국식품이 차지하는 점유율을 높이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고, 현지인들의 식생활 속에 한국식품이 자리 잡고 우리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말레이시아에서의 한국인의 정체성 함양과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한국식품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CSR 기업사회활동을 꾸준히 펼쳐 나가고 있으며, 나아가 모범적인 한국기업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ESG 경영에 대한 전담 조직을 꾸미는 등 현지 경제 사회 속에서 한국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며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