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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스토리

2022산업자원부장관상 김경록

2022년 김경록 수상자

2022년 창업성공스토리


김경록 갈텍스인터내셔널 회장


한국인 첫 아프리카 봉제공장 활용, 미국 케이마트에 와이셔츠 수출


2019년 12월 9일 숙환으로 별세한 김우중 회장은 트리코트 원단과 와이셔츠 수출로 한 때 세계경제를 주도했던 대우그룹을 창업했다. 1994년 대우상사에 입사한 김경록 회장은 16년간 와이셔츠 수출에 매달렸다. 그는 1995년 미국 케이마트가 발주하는 천문학적인 와이셔츠 물량을 저가로 수주했다. 이 가격을 맞춰서 생산 납품하려면 아프리카의 역외(off-shore) 생산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회사 내에서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만류했지만, 이 기회에 아프리카로 진출해야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설득이 받아들여져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탄자니아, 케냐 지역의 봉제공장을 발굴, 미국 의류를 납품할 수 있도록 개척한 최초 한국인이었다. 그는 한국인 기술자를 파견, 초원에서 사냥으로 생계를 하던 근로자들에게 봉제 기술을 전수하고 수출입 관련 법 제도가 미비한 점을 과정별로 해결하면서 완제품을 미국으로 납품하는 기적(?)을 창출했다. 김 회장은 12년동안 해외영업만 전념하다가 삼십 중반에 들어 해외 생산을 직접 경험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꿈은 2005년 베트남 하노이 근처에 대우 의류생산법인 설립 업무를 맡은 주재원으로 파견되면서 성취됐다. 그는 베트남 생산법인 부임이전에는 해외영업을 전담했기 때문에 생산과 공장운영에 대해서는 깊이있게 알지 못했었다. 베트남 생산법인 설립과 함께 파견된 주재원으로 그는 이 기회를 의류 생산측면에서도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생각하고 4년여간의 생산법인 근무를 하면서 해외 의류 수출에 전문가로서 필요한 자질인 영업과 생산을 두루 경험한 의류수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2009년 갈텍스 인터내셔널를 창업하면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였다.


2016년 의료복 스타트업 <피그스> 만나 비약적 성장


급변하는 패션시장의 위험을 과감히 줄이는 방법은 뭘까? 김 회장이 찾은 방법은 유행을 타는 패션사업을 과감히 접고 유니폼 생산과 수출에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근로자 작업복 또는 스포츠 유니폼을 주문받아서 납품하다가 의료용 유니폼 시장에 뛰어들었다. 의료복은 유행에 덜 민감하지만, 자주 교체를 해야 한다. 따라서 반복적으로 수요가 발생하는 이점이 있었다. 2016년 미국 스타트업체인 <피그스> 대표의 제안을 받아 들여서 새로운 의료용 유니폼을 만들었다. 이 회사는 기능성과 세련미를 갖춘 의료복을 생산, 최초 온라인 의료복 전문 D2C(Direct to customer), 소위 소비자 직접 판매를 실시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고객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피그스 매출의 100%가 온라인 판매에서 이뤄진다. 김 회장은 신속성과 내구성, 냄새, 주름, 습기에 강하면서 세련된 테크니컬 컴퍼트 원단을 개발, 베트남 전역 8개 전문공장에 발주. 전량을 미국 의료산업 종사자의 유니폼으로 납품하고 있다. 2022년 미국 수출 수량을 보면 미국 의료업 종사자의 약70% 이상이 김 회장이 생산한 유니폼을 한장 이상은 입고 있다. 김회장과 창업초기부터 갑을 관계가 아닌 파트너관계로 비지니스를 같이 해온 피그스는 창업 7년만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쾌거를 기록했다. 김회장은 피그스의 나스닥 상장일이 마치 나의 일인 것처럼 기쁜 순간이었다고 한다.


100% 도급제 효율적 시스템 운영으로 리스크 줄여

김 회장의 비즈니스 모델은 일종의 봉제품 무역이다. 바이어로부터 오더를 받고 하자가 없는 제품을 생산, 납품하는 것이다. 문제는 하자가 없는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는 사업초기 4~5년을 베트남 북부에서 남쪽 호치민 지역까지 대략 1천개의 봉제공장을 방문하여 고품질을 소화해낼수 있는 전속공장을 5개 확보했다. 이들 공장은 전속계약이 되어 있어 김 회장이 발주한 제품만 생산한다.

그는 급변하는 패션시장에서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근로자 각자가 공정별로 일을 처리하면 1장당 공임을 정하고 근로자가 생산한 양만큼 임금을 가져가는 ‘100%도급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능력이 뛰어난 근로자는 돈을 더 많이 가져가기 때문에 근로자들도 선호했다. 예컨대 공정별로 감수자가 하자를 발견하면 생산한 근로자에게 반품하며 해당 근로자는 퇴근을 못하더라도 하자낸 제품을 완벽하게 수리하는 구조다. 이 도급제 생산방법으로 유니폼을 만든 공장에 적용한 결과, 10년 전에 1명이 하루 10장의 제품을 생산했다면, 최근에는 1명이 30장을 만들면서 인건비 측면에서 가격경쟁력이 3배이상 생긴겄이다.


코로나 팬더믹 봉쇄 뚫고 납기 맞춰 신뢰 확보

코로나19 팬더믹은 베트남 봉제공장에게는 재앙 그 자체였다. 주문은 폭주했으나 원단공급처인 중국에서 항만 등이 봉쇄되면서 원자재를 선적하지 못해 납기를 못 맞추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직원들과 합심하여 이 고난을 극복했다. 그는 코로나 19가 초기에 발생했을 때 2003년 사쓰, 2012년 메르스 발병에 대해 중국이 바이러스관련 질병에 매우 단호하게 봉쇄를 하는 것을 경험한 김회장은 코로나 초기에 바이어에게 오더가 오지않은 상황에서도 3개월 생산 분량의 원단과 자재를 대량으로 확보해 놓았고, 김 회장이 원부자재를 확보한 바로 그달부터 중국이 봉쇄되어 다른 업체들은 원부자재를 공급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회장의 바이어만 물건을 제때 공급받을 수 있었고 김회장 바이어의 경쟁사들은 그들의 거래처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되어 김회장 바이어는 한동안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할 수 있었다. 오더가 넘쳐나고 원부자재는 확보가 되었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단기간에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납기 지연으로 컨테이너 수송보다 화물비행기로 물량을 실어 날라야만 했다. 당시 베트남에서도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모든 공장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김 회장은 근로자와 관리자들을 설득하여 한 달 동안 공장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생산을 독려하여 납기 약속을 지켰다. 이에 바이어측은 납기일을 준수한 김 회장을 배려하여 화물비행기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비용을 보전해줬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납기준수라는 신뢰 확보에 최선을 다했다.


하자 발생하지 않도록 단계마다 검수인력 배치

갈텍스 인터내셔널 전문공장에는 근로자들이 하루 9시간씩 쉴새없이 자신이 맡은 공정을 빈틈없이 수행하려고 애를 쓴다. 의료용 유니폼 바지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이 공장은 80여 공정을 거쳐야 완성된다. 원단이 공장에 반입되면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 등을 빈틈없이 찾아내는 검사과정을 거친다. 원단이 체형에 맞게 디자인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단한다. 근로자들은 자신이 맡은 공정에 맞는 바느질을 한다. 일정 단계가 끝나면 검수하는 인력이 꼼꼼하게 하자가 있는지 여부를 살핀다.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으면 작업한 담당 근로자에게 되돌아간다. 근로자는 퇴근을 못하더라도 자신이 맡은 분량을 책임지고 수선해야 한다.

최종 제품이 컨테이너로 실려 미국까지 갔다가 하자가 발견되면 막대한 클레임이 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제품을 일일이 검수하다보면 검수비용만 한장당 3달러의 비용이 들어가고 반품을 당하면 클레임 비용은 불구하고 해당 상품을 완전한 물품으로 대체하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사전에 철저하게 검수하여 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의 방지를 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운다. 예전에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물건을 실고 가려면 적도를 따라서 항해를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아열대인 적도를 항해하다보면 곰팡이가 발생해 반품이 된 적이 있다.


“쥐고 있는 것보다 쓰는 게 내 돈”

베트남으로 이주한 지 18년을 맞고 있는 김 회장은 하노이와 다낭 등 5개 전문공장에 근무하는 4천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보다 잘 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도움을 주는 봉사활동으로 한인회 부회장과 코참 운영위원을 맡았다. 2021년에는 월드옥타 하노이 지회장을 맡았으며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2019년 한국국제학교 신축기금 미화 3만불을 기부하고 코로나로 하노이 한인사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5천만원을 기부했다. 또한 글로벌 한상드림에 장학금으로 21년, 22년 두차례에 걸쳐 1억원을 내놓았다. 특히 2020년 베트남 중부지역이 태풍피해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한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500만원의 수재지원금을 기부, TV방송 등 언론매체에 보도됐다. 김 회장은 2010년 베트남 소수민족 마을을 방문, 생필품을 기부하고 구정음식을 10시간 함께 준비하면서 위로하는 등 베트남인과 우호관계 증진에도 앞장서고 있다. 김 회장은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이사와 이사장으로서 봉사하면서 국민 교육 향상을 통하여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2022년 12월 2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