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스토리

2017국회의장상(최우수상)-정한영

2017수상자 – 국회의장상(최우수상)

정 한 영 한영E&C 회장

 

무일푼 도미(渡美) 세계 7개국 법인 세워 글로벌경영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던 정한영 한영E&C 회장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행복한 가정의 막내였던 탓에 귀여움을 독자치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어졌고 고등학교 때는 등록금을 납부할 수 없어 1년을 휴학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몸이 허약했던 그는 중학교 1학년부터 6년 동안 유도와 합기도를 꾸준히 배웠던 탓에 각각 2단을 보유하게 됐다. 특히 중학교 유도선생님의 도움으로 또래 아이들에 비해 1년 지나서 서울 배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어릴 적에 그림의 소질도 있었다. 지금도 가까운 지인들에게 스케치 또는 데생한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카카오톡 또는 이메일 등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군 제대 후 MBC탤런트 9기 공채 시험 합격

 

그의 어릴 때 꿈은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고려대학교를 다니다가 군대를 갔다.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한 달 만에 MBC 공채 탤런트 시험에 도전했다. 연기는 물론, 연극 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는 운 좋게 5,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채 9기로 합격했다. 어엿한 탤런트였던 그는 인기 드라마『수사반장』에서 카바레 손님과 깡패, 재수생 등 단역을 소화했다. 



드라마『타국』에서는 사무라이의 역할을 맡아서 박원숙 선배와 연기를 했다. 현재도 9기 동기 가운데 길용우, 신신애(세상은 요지경을 부른 가수), 권은하, 이원용 등이 활약하고 있다.




청년시절의 정 회장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탤런트 첫 출연료 5,000원을 의미있는 곳에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경향신문사에 불우 원호대상자 돕기 성금으로 기탁했다.

또한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탤런트 동기들과 일일찻집을 열어 30만원을 모금, 기부했다. 그러나 스타생활은 순탄치 만은 않았다. 가족들의 강력한 반대로 화려한 연예인의 생활을 접고 25세 때인 1978년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밑바닥 이민자 생활로 인간관계 터득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지만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던 탓에 초창기의 미국생활은 고단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사무실 청소원과 페인트 공, 프리마켓 물건판매, 자동차 세일즈맨, 구두수선 등을 하며 겨우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러다 1986년 친형 정규수 회장이 운영하던 회사의 미국 지사를 맡아서 1993년까지 영업에 뛰었다. 그는 세일즈를 하면서도 학업의 필요성을 느껴 뒤늦게 산타클라라 미션 칼리지(SANTA CLARA MISSION COLLEGE)를 졸업했다.

졸업하자마자 삼성반도체가 1987년 실리콘밸리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때 ‘반도체 생산 클린룸 공사 사업’에 참여했다. 그는 이때 실리콘벨리 상공회의소 부회장(1989~1992)을 맡았다. 그는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었는데, 한 치의 오차를 허락하지 않는 클린룸 공사와는 잘 맞았다. 1996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현대반도체공장과 웨일스의 LG반도체 등의 공사를 끝낼 때의 정 회장은 반도체 클린룸 해외공사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었다.

2001년 50세에 중국 지사의 경쟁력과 중국내 클린룸 공사 시장을 파악하기 위해 3개월을 목표로 상하이로 출장을 갔다. 특히 수년 동안 수십억 원이 투입됐던 중국지사의 운영은 신통치 않았다.

그가 중국에 온지 1개월 만에 지사장이 사표를 냈다. 본사에서도 중국지사를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정 회장은 중국당국에 폐업신고서를 내고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준비를 하던 차에 중국에 진출한 S회사에서 “반도체 클린룸 공사를 해볼 의향이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공사의 견적서를 내고 작업에 착수한 결과 큰 수익을 남겼다.

 

 

50세 중국 재이주… 클린룸 호황으로 자리잡다

 

그는 앞으로 중국에서 반도체 클린룸 시장이 호황을 이룰 것으로 보고, ‘한영E&C’를 설립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이 친환경 건축내장재 생산 공장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때 세웠던 상해한우건재유한공사와 상해한영건축안장유한공사(1급 면허보유)을 기반으로, 반도체 클린룸(Clean Room)용 특수 판넬 생산을 시작으로 바이오 클린룸(Bio Clean Room) 내장재 및 초대형 병원 특수내장재, 초고층 대형 인텔리전트 빌딩의 내장재와 첨단 커튼월 외장재 등을 생산했다. 상해 판넬 공장은 도시의 확장으로 재개발되면서 광저우로 옮겼다. 지금까지 정 회장이 설립한 판넬 공장은 한국을 비롯, 중국 광주와 베트남 하노이 등 3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처럼 친환경 판넬 자재를 직접 생산하는 것은 클린룸 공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클린룸공사에 쓰이는 판넬은 코일을 사가지고 와서 성형과 절곡, 코팅, 코어 본딩의 과정을 거쳐 판넬을 만든 뒤 발주처의 클린룸에 설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체 친환경 판넬 자재를 생산하는 공장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는 클린룸 공사의 경쟁력이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정 회장은 2002년부터 사업기반을 미국에서 중국으로 완전히 옮겼다. 중국법인을 폐업하려던 상황에서 중국 내 클린룸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최대호황으로 이어졌다. 이때 벌었던 돈의 일부를 상해 홍천로(虹泉路)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적원별서(赤園別墅) 내 단독주택을 구입했다. 대지 200평에 전망대 포함 5층 단독맨션의 연건평은 170평이다. 자택의 뒤쪽은 1,000평 규모의 공원과 맞닿아 있다. 그는 5층 규모의 저택을 치장하고 인테리어를 하는데 구입가격에 버금가는 돈을 투입했다. 우선 ‘숨 쉬는 돌’로 알려진 홍옥의 원석으로 바닥재 1층부터 3층까지 깔았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차고 위에 수영장과 골프연습장을 만들었으며 담을 없애고 서양식 저택처럼 잔디를 깔았다.

1층에는 백악관의 벽난로를 그대로 벤치마킹해서 만들어 놓은 거실과 주방, 식당을 배치했으며 2~3층에는 부부와 자녀들을 위한 방을 만들었다. 동화에 나오는 빨간색으로 칠한 뾰쪽한 지붕도 꾸몄다. 특히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집 뒤쪽과 맞닿은 공원 일부에 직접 나무와 꽃을 심고, 평소에도 이들을 섬세하게 가꾸고 있었다.



정 회장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일감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신뢰를 바탕으로 세일즈를 했다. 이러한 경영철학의 덕분에 중국 상해의 본사 외에 한국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몽골, 헝가리 등 세계 7개국에 법인을 세워 무차입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 진출하게 된 것은 클린룸 공사와 연결됐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8년에는 베트남에 진출, 호치민 인텔의 클린룸 공사와 2009년 하노이 삼성휴대폰 공장의 클린룸 공사를 잇달아 수주했다. 2014년에는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2015년에 몽골, 2016년에 헝가리에 법인을 각각 세워 클린룸 시장을 뚫었다.

2016년에는 한국에 법인을 세워 42명의 직원을 채용,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U턴 기업인증을 받았다. 정 회장은 앞으로 클린룸 공사가 동남아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발주될 것으로 보고 2018년 4월 하노이에 5층 규모의 건물을 매입, 본사로 활용하고 있다.

 

긍정왕 상하이 콧수염과 ‘미코 아빠’로도 유명

 


정한영 회장의 별칭은 ‘상하이 콧수염’이다. 그는 미국에서부터 콧수염을 길렀다가 깎기를 반복했었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부인 강혜경과 결혼 후 딸 3명을 뒀는데, 이들이 자라면서 아빠의 콧수염을 보고 만지면서 계속 기르라고 간청하는 바람에 그의 마스코트가 됐다.

그의 긍정적 사고를 토대로 자녀를 길렀던 결과, 3명의 딸이 번듯하게 성장했다. 장녀 정한아름 양은 미국 UCLA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와 메사추세츠에서 변호사를 한 뒤 현재는 고려대학교 법대에서 박사과정을 끝냈다.

정 회장은 ‘미코의 아빠’로 더 알려졌다. 그 이유는 둘째 딸 정소라 양이 미스 서울 선과 미스코리아 진(2010)에, 막내 딸 정유리 양이 미스코리아 서울 미(2012)로 각각 선발되면서 ‘미스코리아 딸 부자’로 유명세를 탔던 것이다.

그의 경영철학은 한번 맺은 인연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관계와 성실, 신뢰, 의리를 중시하는 그의 경영철학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세계 클린룸 공사를 잇달아 수주하게 된 비결이라는 것이다. 단적인 사례는 21년 동안 클린룸 공사를 하면서 한 번도 발주처와 협력사를 바꾸지 않은 것이며 또한 회사의 임원 절반가량이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발주처든 직원이든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사례이다.

정 회장은 자기관리가 철저한 기업인이다. 그는 가급적 저녁시간에 접대 및 모임을 자제하고 집에 와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는 일과 가정, 건강에 각각 30%를 할애하고 10%는 봉사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유일한 낙은 운동을 하면서 TV 뉴스를 시청하는 것이다.

그는 7개국에 흩어져 있는 법인을 관리하기 위해 3일마다 비행기를 타는 등 강행군을 하고 있다. 일례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2년 동안 비행기를 탔던 티켓이 217장이었다. 이를 단순 계산할 경우 평균 3.36일마다 한번 꼴로 비행기를 탔다는 것이다.

 

꾸준한 자기관리로 해외 7개 법인 경영

 

그는 긍정적 사고와 꾸준한 운동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한 경험담을 엮어서 『상하이 콧수염 지구 백 바퀴』(2016)라는 책을 펴냈다. 이밖에 2009년에 상해한인회장과 상해한글학교 재단이사장을 각각 맡아서 상해 한인회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업인 정 회장은 봉사와 기부에 앞장을 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그는 정소라 양이 받은 상금 2,000만원을 국제백신센터에 기부했다. 또한 상해한인회 회장 시절에 스촨성 지진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2010미스코리아 전원을 상해로 초청, 자선의 밤을 개최해 성금 5,000만원을 중국 적십사에 기부했다. 이밖에 2011년 구당 김남수 선생의 ‘배워서 남주자’는 가르침을 받들어 상해 뜸사랑봉사회를 창립, 10년째 회장직을 맡아 봉사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