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고상구 수상자
K&K글로벌트레이딩 고상구회장
베트남에 홀딱 빠져든 고상구 회장
2002년에 처음 베트남에 온 필자는 지금 유통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보니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지 못하지만 당시 나는 액세서리 사업을 하고 있었다. 여성들의 헤어핀이나 미용재료 등을 제조 판매하는 기업이었는데 중국으로 공장이전을 준비하던 중,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던 친구와 함께 베트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베트남을 방문하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되어 4강 신화를 이룩하고 대한민국이 월드컵신드롬에 들떠 있던 그해 6월, 베트남에 입국하게 되었다. 그 때는 베트남의 하노이와 호치민도 구분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친구가 베트남 하노이에 백화점을 짓고 있었는데 그곳 현장을 같이 가보게 되었다. 그 지역이 현재의 장보(GiangVo)거리였다. 그 당시 그곳에 찌엔람장보(Trien Lam GiangVo)라는 명소가 있었는데, 당시 유명 전시회는 다 그곳에서 개최될 만큼 하노이에서 유일한 큰 전시장이었다. 아무튼 장보거리의 중심코너에 있는 백화점 공사현장을 갔는데 친구가 나에게 덜컥 백화점 운영을 제안하는 게 아닌가. 백화점을 거의 짓기는 했으나 입점도 받아야 하고 자금으로 고생을 하고 있어 백화점을 짓더라도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베트남 땅에 와서 장보대로 앞을 보는데 그때 문득 눈앞에 오토바이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정말 장관중에 장관으로 느껴졌다. 그 모습은 바로 1990년 즈음의 중국의 모습과 같았다.천안문사태가 끝난 이듬해인 1990년에 나는 중국 북경에 갈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북경에 우리 한국기업이 단 1개 밖에 없을 때니까 참 옛날 일이다. 그 공장은 럭키금성(현 LG)이 운영하던 봉제공장(중국봉제공장과 합작)으로 기억한다. 어마어마했던 중국붐은 그 이후 개방이 본격화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 당시 중국 자금로를 지나 다니던 어마어마한 자전거 행렬들이 신호대기에 멈추어 섰다가 신호가 바뀌니 물밀듯이 밀려오는 그광경의 끝없는 인파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단지 오토바이와 자전거라는 수단만 달라졌지 1990년의 중국과 2002년의 베트남은 똑같았다. 무한한 에너지와 열정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1990년 이후 중국은 단 12년이라는 시간동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발전을 거듭했었다는 것이 떠오르며 “아! 이제는 베트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베트남에 홀딱 빠져들고 말았다. 사람들마다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 순간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한국 백화점, 코리아타운 개점
하지만 현실적으로 백화점 운영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한국 신세계백화점에서 바이어과장으로 일하던 후배를 설득해 베트남으로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베트남으로 가자고 하니 그 후배의 부인은 절대반대에 나섰다. 안정된 직장을 두고 낮선 외국, 그것도 당시 엄청나게 후지국이었던 베트남에 가겠다고 하니 어느 부인이 좋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그 후배도 베트남에 홀려서였을까? 결국은 제안을 승낙하고 베트남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베트남 운영을 맡기로 결정한 것이 6월인데 개장일은 10월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4개월 만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신세계백화점 출신 후배는 베트남 현지에서 개장을 준비하기로 하고 나는 한국에서 필요한 물건을 소싱하는 업무를 하였는데 나도 준비를 끝내고 10월초 베트남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백화점 건물은 당시 하노이에서 아주 큰 2층짜리 매장이었고 이름은 ‘코리아타운’으로 정했다. 말 그대로 한국제품 전용 쇼핑몰인 한국촌을 만들고 싶었다. 4개월동안 모든 직원들은 정말 바쁘게 준비했다. 나름대로의 판매 계획도 세웠다. 주변의 제안을 고려해 먼저 한국의 이월상품을 가지고 와서 팔기로 했다. 베트남의 구매력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상품의 종류는 아주 다양했다. 신사복, 숙녀복, 캐주얼복, 란제리, 아동복, 유아복, 생활용품, 침구류, 소형가전, 신발, 인삼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삼이 포함된 이유는 한국식품을 모두 취급할 수는 없고, 한국의 대표적인 건강식품인 인삼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넓은 백화점 매장을 채우기 위해 전국을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 당시 한국은 홈쇼핑 비즈니스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라 지금과는 다르게 판매 재고가 많을 때였다. 이런 홈쇼핑 재고나 이월상품을 찾기 위해 곤지암, 대구(침구류), 하남(양복) 등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창고에 있는 있는 재고들을 구해서 베트남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6월에 백화점 운영 제안을 받고,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준비를 한 끝에 10월 17일에 드디어 개장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이 사업을 시작한 후 딱 6개월만에 사업을 정리하게 되었다. 쉽게 생각하면 파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파산은 절대 아니다. 나의 결정으로 정리한 것이다. 요즘 말로하면 ‘손절’이다. 그 당시 투자액이 23억원 가량이었는데 나는 이 결정으로 이 중에 3억원 가량을 건지게 되었다.
“성공한 실패”
이렇게 파격세일을 통한 정리로 약 30만불의 현금을 건질수 있었다. 총 23억원을 투자해서 3억원 남짓 남았으니 20억원을 손해본 것이다. 참담한 실패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성공한 실패”라고 말한다. 손해 본 금액도 크지만 그래도 30만불이 남았지 않는가? 20여 년 전이니 그 금액은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었고 내가 다시 심기일전하여 재기 할 수 있기에 충분히 큰 자금이었다. 날린 건 날린 거고 다시 한 번 재도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당시 빠른 판단을 하지않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려운 백화점운영을 지속했다면 30만불은 거녕 몽땅 다버리고 임대료가 밀리게 되고, 직원급여도 주지 못하고 쫓겨났거나 야반도주를 해야 했을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분명 성공한 실패였다. 또한 백화점 사업을 통해 내가 얻게 된 아주 귀중한 자산이 있었다. 바로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찾은 것이었다. 사실 정보가 부족한 베트남의 특성을 감안하면 현지의 시장동향이나 특성, 인력관리 방법, 운영노하우 등 당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치열하게 실패했기 때문에 더 얻은 경험이 컸다. 이를 종합해 베트남에서 뭐가 잘 되는지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실패를 실패로 끝낸다면 그건 정말 실패지만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다면 큰가치라고 생각한다.
인삼, 양복, 이불, 문구·팬시류가 바로 돈 되는 아이템
경험으로 파악한 대박 아이템은 바로 인삼, 양복, 이불, 문구·팬시류였다. 문구·팬시류의 경우 그 당시 아주 기본적인 제품들만이 시장에 나와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 가져온 문구류는 캐릭터가 그려진 예쁘고 귀여운 물건이 대다수였다. 펜이며 노트며 어른인 내 눈에도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은 예쁜 제품들이 참 많았다. 그러니 당연히 베트남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주요 고객층은 하노이 근처에 거주하는 부자집 아이들이었다. 침구류의 경우, 부피가 큰 상품 특성 때문에 베개피, 이불피 등은 한국에서 조달해왔고 이불솜, 베개솜 등은 현지에 이미 진출해 있던 한국기업의 유명제품을 사용해서 상품을 완성했다. 당시 이런 대박제품들이 어느 정도 수익성이 좋았다. 양복은 한 벌에 2~3만원대(이월상품)에 구입해서 200만~300만동(약 15만원) 정도에 판매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이불의 경우 1만5000원 정도에 구입하여 200만동(약 10만원)에 판매했고, 문구·팬시류도 꽤 수익성이 좋았다.
인삼을 선택하다
이 같이 돈 되는 아이템 중에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인삼’이었다. 백화점 정리 이후 나와 나를 믿고 베트남으로 들어온 후배는 각자 원하는 아이템을 가지고 각자 새로 시작하기로 하였다. 후배는 문구·팬시점을 택했고, 나는 이불과 인삼을 택하여 재기에 나섰다. 후에 나는 수익성이 더 좋은 인삼에만 올인하게 된다. 브랜드명은 ‘STAR KOREA’라고 지었다. 의미는‘한국의 인삼은 STAR다’라는 단순한 의미였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인삼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베트남 사람들에게 인삼주가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인삼주 한 병의 가격이 얼마였을까? 무려 3,000달러였다. 그 당시는 고가의 경우 달러 결제가 가능하던 시기였다. 3,000달러의 현금을 받고 인삼주를 팔았던 것이다. 그런데 가격이 왜 이렇게 비쌌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인삼주는 원래 팔려고 내 놓은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삼주를 구비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STAR KOREA 매장에서 다양한 인삼 제품을 구비해서 판매를 하였는데 베트남 소비자 입장에서는 홍삼精이나 분말제품 혹은 가공제품 안에 과연 정말 인삼이 들어있기는 한 건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인삼 자체도 어떻게 생겼는지 생소한데다가 당시 베트남 유통에 있어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가 높지 않은 시절이었다. 어떻게 하면 인삼 실물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인삼주를 착안하게 되었다. 인삼주를 통해 한국인삼의 실물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각 매장에 인삼이 가득 들어간 인삼주를 전면에 배치했다. 홍보효과를 위해 인삼병 아래 받침대에는 용문양 등으로 아주 화려하게 목곽장식을 하고 동판에 Before Dragon 이라고 작품명까지 붙여 인삼주가 마치 작품인양 제품의 수준을 높였고,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예쁜 인삼주병에 담았다. 그리고 그 인삼주 가격을 아예 높은 가격으로 붙어 놓았다. 그런 이유는 물론 애초에 인삼주를 판매할 생각도 없었고 인삼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니 가격을 낮게 정해 놓으면 인삼을 가볍게 생각할 것 같아 엄청난 가격을 붙여 놓은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제품 구경을 하던 손님들이 인삼주를 가리키며 “저건 얼마냐?”고 묻기 시작한 것이다.인삼주가 비싸야 인삼제품이 귀한 식품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인삼주 하나에 2,000불 또는 3,000불이라고 써 붙인 것이다. 그런데 이게 대박이 났다. 그 비싼 인삼주를 그것도 달러를 현찰로 가져와서 베트남 사람들이 신나게 사갔던 것이다. 그 용도는 거의 대부분 선물용이었다. 본인이 마시기보다는 귀한 분에게 중요한 시기에 주는 그런 고급 선물용품으로 자리매김한 것이었다.큰병의 인삼주경우 한국에서 가져온 인삼 2채를(1채가 6년근 인삼 5뿌리 정도) 베트남의 40도짜리 전통주로 담궈서 만든다. 인삼은 한국 술에 담으면 더운 베트남의 기후 때문에 상하기 쉽다. 요즘에는 교민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만 ‘루머이(LuaMoi)’같은 좋은 술이 베트남에도 많다.
우리 상품을 이왕 팔려면 최고의 제품을 팔아야....
최근 여러 기관에서 다양한 한국 기업 제품을 소개하는 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활동이다. 그런데 몇몇 기관에서 개최하는 시장개척단, 판촉전 등의 행사를 가보면 순도 낮고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품들이 꽤나 보인다. 해외에 나가 시장을 개척하는 행위는 일종의 국위선양 활동인데 좋지 않은 제품을 소개하면 오히려 국가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아 두렵다. 외국에 수출하는 제품, 특히 건강식품류는 철저히 선별된 제품으로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9년 여수에서 개최된 제18차 세계한상대회 때 이야기다. 내가 세계한상대회 대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였다. 나는 당시 관련 지자체장에게 “수출품목은 최대한 선별해야 한다. 관계로 인해서 수출지원 업체를 선정하지 말아 달라. 세계 여러 바이어들이 참석하는 행사에는 당당하고 떳떳하고 자신있는 물건들이 나가야하는 것 아니냐. 특히 자격도 미달되고 품질도 미달되는 상품들은 절대 수출하면 안 된다. 이건 시장개척이 아니라 시장을 망가뜨리는 것이다.”라고 강변한 적이 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이다. 문제는 몇몇의 미선정업체가 관련 정부나 기관에 민원을 넣는다는 것이다. 민원에 민감한 기관으로서는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엄격한 기준, 즉 룰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홍삼의 경우 성분분석표, 증명서(Certificate),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건강식품 인증허가증 등의 자료를 갖춘 업체만 참여토록 하는 것이다.
K-MARKET의 미래는 온오프라인 통합에 있다
우리가 공격적으로 신규매장 오픈을 했던 또 다른 이유는 추후 이 매장들을 온오프라인 통합의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K-MARKET의 장점은 많은 매장을 갖고 있다는데 있는데 이를 온라인의 장점과 결합시켜 온오프라인매장의 장단점을 서로 해소하자는 것이다. 온라인의 주요 장점은 편리성과 상품의 다양성 즉, 오프라인 매장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물건을 클릭 몇 번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 매장의 규모에 따라 구비할 수 있는 제품군이 제한적이기 마련인데 온라인은 그렇지 않다. 현재 K-MARKET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옷, 휴대폰, 소형 가전, 중고 자동차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지 않는 상품들도 다수 판매하고 있다. 반면 온라인 비즈니스의 문제점은 거점별 물류센타운영과 물류배송에 대한 리스크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다른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베트남의 경우도 대부분의 주문은 COD(Cash on Delivery)로 진행되고 있다. 다시 말해 결제 전 주문을 하고 물건이 도착하면 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단순 변심 등의 이유로 지불을 거부하는 경우가 상당하고 이를 반품 받기 위해 두 배의 물류비가 든다. 베트남 내 홈쇼핑 사업이 철수하거나 철수를 준비하며 제자리걸음인 이유도 이처럼 물류비 손실과 중간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또한 배송시간에 대한 과도한 경쟁도 문제이다. 한국의 경우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에 배송을 해 주는 방식이 많은데 이를 위해 작업자들이 야간 선별작업을 해야 하고 급하게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이나 배송기사들의 과로와 건강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라이더들과 관련된 안타까운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나 역시 왠지 마음이 편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 K-MARKET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거점으로 활용하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보통 물류센터에서 각 매장으로 하루 2~3회씩 출고하는데 이를 활용하여 고객들이 직접 가까운 매장에 방문하여 온라인으로 주문한 제품을 수령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희망할 경우 자택에서 배송을 받아도 된다. 하지만 베트남 택배사가 저녁 6시~7시까지만 배송이 가능한 반면 K-MARKET은 밤12시까지 영업을 한다. 고객이 다음날 급히 필요한 물건일 경우 밤12시 전까지 언제든지 매장에서 물건을 찾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객의 입장에서 더 편한 선택일 수도 있고, 이렇게 되면 물류비용 부담이 줄어 경쟁력은 강화된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건을 전달받기가 편해진다는 효율적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반품에 있어서도 K-MARKET매장에서 물건을 열어 확인해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매장에서 바로 반품처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 별도의 배송직원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 베트남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K-MARKET은 매장 확장에 다시 박차를 가할 것이며 매장을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온오프라인 통합도 본격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코로나라는 복병
2020년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났다. 일반 소비자들이 보았을 때 K-MARKET은 필수업종으로 분류되어 여전히 영업을 할 수 있고 오히려 소비자가 늘어서 코로나 덕을 봤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먼저 많은 교민들이 코로나로 베트남을 떠났고, 2019년 430만명이 방문하던 한국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겼고 식당들의 영업중단으로 B2B 식자재 매출이 중단되었다. 우리 K-MARKET은 B2B 사업이 당사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베트남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한국식품은 상당부분 K-MARKET에서 납품하는데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봉쇄가 이어지면서 B2B 사업의 상당부분이 중단되어 버렸다. 뿐만아니라 Redsun, Golden Gate와 같은 베트남 현지 대형 F&B그룹에도 우리의 큰 거래처이지만 코로나로 납품이 중단되었다. B2B 사업 손실로 많은 적자가 발생했고 매장 근무자중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매장이 전직원과 함께 2주간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황 등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속에서 회사의 영업이익이 나빠지자 많은 직원들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단이 필요했다. K-MARKET은 모든 매장이 직영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는 영업에 어려움을 겪는 직영매장의 철수를 결정했다. 철수하기로 결정된 매장 대부분은 규모가 큰 매장들이라 투자비용이 많이 들었고,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게 꾸며진 매장들이라 철수를 하게 되면 투자한 비용 모두를 버리게 되는 큰 손실이 따를 수밖에 없었 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100여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라 몇몇 매장 정리에 속 쓰려 할 여유가 없었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고 나니 K-MARKET의 운영은 단숨에 정상화되었고 손익 실적은 오히려 그전보다 좋아지는 수치로 나타났다. 생각만 바꾸면 아주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아깝다고 버리지 못하면 나중에 더 큰 화를 범하게 된다. K-MARKET은 물류센터를 비롯해 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지만 무차입경영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하노이 물류센터 건립 당시 베트남에 보내야 할 투자자금 외환송금의 법적처리가 원활하지 않아 불가피하게 일시적으로 차입했던 일부 차입금도 코로나 위기임에도 올해 9월 말 모두 상환하였다.
K-MARKET의 CSR
CSR은 베트남 진출 한국기업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해외진출 한국기업들은 외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지 않은가. 내가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들을 상대로 이익을 내든 베트남 국민들을 상대로 이익을 내든 나는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내 기업의 이미지가 아니라 한국기업이 베트남에 얼마나 기여를 하는지에 대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K-MARKET은 예전부터 CSR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했다. 도와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CSR활동에는 베트남을 위해 해야하는 CSR이 있고, 교민들을 위해 해야하는 CSR이 있다. 베트남을 위한 CSR활동으로는 2013년부터 베트남의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전 임직원이 고아원과 복지원에 매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으며 베트남 농가가 코로나로 인한 수출길이 막히자 베트남 농가의 농작물을 구입해 원가로 판매하는 “K-MARKET & 베트남 농가 상생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또한 지난 2020년 4월 베트남 조국전선중앙위원회를 방문하여 힘든 시기를 조속히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현금 10만 US$와 구호물품 7만 US$를 기부하였다. 이외에 베트남 중부지방 홍수 피해 이재민을 위한 기금 모금, 굿네이버스와 농가 지원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농가지원사업을 지원하였고, 코로나 초기 코로나 발병자 1명만 발생해도 해당지역 전체가 격리되었을 때 격리지역에 생수와 마스크, 손소독제, 식품 등을 많이 후원하였고, 교민들을 위해서는 2021년 8월 코로나 확산으로 거의 공포 분위기에 휩싸 인 호치민 교민들의 백신 조달과 확진자 구호 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10만US$를 호치민 한인회에 기부하여 교민들이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많은 교민들 중에 여행업 종사자들은 코로나로 생계가 어려울 정도의 직격탄을 맞아서 그들에게 코로나 극복 후원금을 전달하였다. 베트남 축구국가대표 한국 코치진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4년간 3명에게 주택을 지원하였고, 코로나 입국자들의 격리 시 격리 교민 구호물품 지원 등의 수많은 기부 활동에 참여하였다.
나는 청년시절 “인류에의 봉사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사업이다.”라는 말을 접하고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반드시 성공을 하면 세상을 밝히는 작은 힘이 되겠다는 생각을 마음 깊이 간직했고, 지금 그 작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CSR활동은 기업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K-MARKET은 베트남에서 1등 기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에서 제일 사랑받는 일류기업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2019년 고상구 수상자
K&K글로벌트레이딩 고상구회장
베트남에 홀딱 빠져든 고상구 회장
2002년에 처음 베트남에 온 필자는 지금 유통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보니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지 못하지만 당시 나는 액세서리 사업을 하고 있었다. 여성들의 헤어핀이나 미용재료 등을 제조 판매하는 기업이었는데 중국으로 공장이전을 준비하던 중,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던 친구와 함께 베트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베트남을 방문하게 되었다.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되어 4강 신화를 이룩하고 대한민국이 월드컵신드롬에 들떠 있던 그해 6월, 베트남에 입국하게 되었다. 그 때는 베트남의 하노이와 호치민도 구분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친구가 베트남 하노이에 백화점을 짓고 있었는데 그곳 현장을 같이 가보게 되었다. 그 지역이 현재의 장보(GiangVo)거리였다. 그 당시 그곳에 찌엔람장보(Trien Lam GiangVo)라는 명소가 있었는데, 당시 유명 전시회는 다 그곳에서 개최될 만큼 하노이에서 유일한 큰 전시장이었다. 아무튼 장보거리의 중심코너에 있는 백화점 공사현장을 갔는데 친구가 나에게 덜컥 백화점 운영을 제안하는 게 아닌가. 백화점을 거의 짓기는 했으나 입점도 받아야 하고 자금으로 고생을 하고 있어 백화점을 짓더라도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베트남 땅에 와서 장보대로 앞을 보는데 그때 문득 눈앞에 오토바이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정말 장관중에 장관으로 느껴졌다. 그 모습은 바로 1990년 즈음의 중국의 모습과 같았다.천안문사태가 끝난 이듬해인 1990년에 나는 중국 북경에 갈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북경에 우리 한국기업이 단 1개 밖에 없을 때니까 참 옛날 일이다. 그 공장은 럭키금성(현 LG)이 운영하던 봉제공장(중국봉제공장과 합작)으로 기억한다. 어마어마했던 중국붐은 그 이후 개방이 본격화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 당시 중국 자금로를 지나 다니던 어마어마한 자전거 행렬들이 신호대기에 멈추어 섰다가 신호가 바뀌니 물밀듯이 밀려오는 그광경의 끝없는 인파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단지 오토바이와 자전거라는 수단만 달라졌지 1990년의 중국과 2002년의 베트남은 똑같았다. 무한한 에너지와 열정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1990년 이후 중국은 단 12년이라는 시간동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발전을 거듭했었다는 것이 떠오르며 “아! 이제는 베트남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베트남에 홀딱 빠져들고 말았다. 사람들마다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 순간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한국 백화점, 코리아타운 개점
하지만 현실적으로 백화점 운영에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한국 신세계백화점에서 바이어과장으로 일하던 후배를 설득해 베트남으로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베트남으로 가자고 하니 그 후배의 부인은 절대반대에 나섰다. 안정된 직장을 두고 낮선 외국, 그것도 당시 엄청나게 후지국이었던 베트남에 가겠다고 하니 어느 부인이 좋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그 후배도 베트남에 홀려서였을까? 결국은 제안을 승낙하고 베트남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베트남 운영을 맡기로 결정한 것이 6월인데 개장일은 10월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4개월 만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신세계백화점 출신 후배는 베트남 현지에서 개장을 준비하기로 하고 나는 한국에서 필요한 물건을 소싱하는 업무를 하였는데 나도 준비를 끝내고 10월초 베트남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백화점 건물은 당시 하노이에서 아주 큰 2층짜리 매장이었고 이름은 ‘코리아타운’으로 정했다. 말 그대로 한국제품 전용 쇼핑몰인 한국촌을 만들고 싶었다. 4개월동안 모든 직원들은 정말 바쁘게 준비했다. 나름대로의 판매 계획도 세웠다. 주변의 제안을 고려해 먼저 한국의 이월상품을 가지고 와서 팔기로 했다. 베트남의 구매력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상품의 종류는 아주 다양했다. 신사복, 숙녀복, 캐주얼복, 란제리, 아동복, 유아복, 생활용품, 침구류, 소형가전, 신발, 인삼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삼이 포함된 이유는 한국식품을 모두 취급할 수는 없고, 한국의 대표적인 건강식품인 인삼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넓은 백화점 매장을 채우기 위해 전국을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 당시 한국은 홈쇼핑 비즈니스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라 지금과는 다르게 판매 재고가 많을 때였다. 이런 홈쇼핑 재고나 이월상품을 찾기 위해 곤지암, 대구(침구류), 하남(양복) 등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창고에 있는 있는 재고들을 구해서 베트남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6월에 백화점 운영 제안을 받고,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준비를 한 끝에 10월 17일에 드디어 개장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이 사업을 시작한 후 딱 6개월만에 사업을 정리하게 되었다. 쉽게 생각하면 파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파산은 절대 아니다. 나의 결정으로 정리한 것이다. 요즘 말로하면 ‘손절’이다. 그 당시 투자액이 23억원 가량이었는데 나는 이 결정으로 이 중에 3억원 가량을 건지게 되었다.
“성공한 실패”
이렇게 파격세일을 통한 정리로 약 30만불의 현금을 건질수 있었다. 총 23억원을 투자해서 3억원 남짓 남았으니 20억원을 손해본 것이다. 참담한 실패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성공한 실패”라고 말한다. 손해 본 금액도 크지만 그래도 30만불이 남았지 않는가? 20여 년 전이니 그 금액은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었고 내가 다시 심기일전하여 재기 할 수 있기에 충분히 큰 자금이었다. 날린 건 날린 거고 다시 한 번 재도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당시 빠른 판단을 하지않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려운 백화점운영을 지속했다면 30만불은 거녕 몽땅 다버리고 임대료가 밀리게 되고, 직원급여도 주지 못하고 쫓겨났거나 야반도주를 해야 했을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분명 성공한 실패였다. 또한 백화점 사업을 통해 내가 얻게 된 아주 귀중한 자산이 있었다. 바로 새로운 사업아이템을 찾은 것이었다. 사실 정보가 부족한 베트남의 특성을 감안하면 현지의 시장동향이나 특성, 인력관리 방법, 운영노하우 등 당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치열하게 실패했기 때문에 더 얻은 경험이 컸다. 이를 종합해 베트남에서 뭐가 잘 되는지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실패를 실패로 끝낸다면 그건 정말 실패지만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다면 큰가치라고 생각한다.
인삼, 양복, 이불, 문구·팬시류가 바로 돈 되는 아이템
경험으로 파악한 대박 아이템은 바로 인삼, 양복, 이불, 문구·팬시류였다. 문구·팬시류의 경우 그 당시 아주 기본적인 제품들만이 시장에 나와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 가져온 문구류는 캐릭터가 그려진 예쁘고 귀여운 물건이 대다수였다. 펜이며 노트며 어른인 내 눈에도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은 예쁜 제품들이 참 많았다. 그러니 당연히 베트남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주요 고객층은 하노이 근처에 거주하는 부자집 아이들이었다. 침구류의 경우, 부피가 큰 상품 특성 때문에 베개피, 이불피 등은 한국에서 조달해왔고 이불솜, 베개솜 등은 현지에 이미 진출해 있던 한국기업의 유명제품을 사용해서 상품을 완성했다. 당시 이런 대박제품들이 어느 정도 수익성이 좋았다. 양복은 한 벌에 2~3만원대(이월상품)에 구입해서 200만~300만동(약 15만원) 정도에 판매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이불의 경우 1만5000원 정도에 구입하여 200만동(약 10만원)에 판매했고, 문구·팬시류도 꽤 수익성이 좋았다.
인삼을 선택하다
이 같이 돈 되는 아이템 중에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인삼’이었다. 백화점 정리 이후 나와 나를 믿고 베트남으로 들어온 후배는 각자 원하는 아이템을 가지고 각자 새로 시작하기로 하였다. 후배는 문구·팬시점을 택했고, 나는 이불과 인삼을 택하여 재기에 나섰다. 후에 나는 수익성이 더 좋은 인삼에만 올인하게 된다. 브랜드명은 ‘STAR KOREA’라고 지었다. 의미는‘한국의 인삼은 STAR다’라는 단순한 의미였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인삼 사업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베트남 사람들에게 인삼주가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인삼주 한 병의 가격이 얼마였을까? 무려 3,000달러였다. 그 당시는 고가의 경우 달러 결제가 가능하던 시기였다. 3,000달러의 현금을 받고 인삼주를 팔았던 것이다. 그런데 가격이 왜 이렇게 비쌌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것은 바로 인삼주는 원래 팔려고 내 놓은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삼주를 구비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STAR KOREA 매장에서 다양한 인삼 제품을 구비해서 판매를 하였는데 베트남 소비자 입장에서는 홍삼精이나 분말제품 혹은 가공제품 안에 과연 정말 인삼이 들어있기는 한 건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인삼 자체도 어떻게 생겼는지 생소한데다가 당시 베트남 유통에 있어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가 높지 않은 시절이었다. 어떻게 하면 인삼 실물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인삼주를 착안하게 되었다. 인삼주를 통해 한국인삼의 실물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각 매장에 인삼이 가득 들어간 인삼주를 전면에 배치했다. 홍보효과를 위해 인삼병 아래 받침대에는 용문양 등으로 아주 화려하게 목곽장식을 하고 동판에 Before Dragon 이라고 작품명까지 붙여 인삼주가 마치 작품인양 제품의 수준을 높였고,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예쁜 인삼주병에 담았다. 그리고 그 인삼주 가격을 아예 높은 가격으로 붙어 놓았다. 그런 이유는 물론 애초에 인삼주를 판매할 생각도 없었고 인삼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니 가격을 낮게 정해 놓으면 인삼을 가볍게 생각할 것 같아 엄청난 가격을 붙여 놓은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제품 구경을 하던 손님들이 인삼주를 가리키며 “저건 얼마냐?”고 묻기 시작한 것이다.인삼주가 비싸야 인삼제품이 귀한 식품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인삼주 하나에 2,000불 또는 3,000불이라고 써 붙인 것이다. 그런데 이게 대박이 났다. 그 비싼 인삼주를 그것도 달러를 현찰로 가져와서 베트남 사람들이 신나게 사갔던 것이다. 그 용도는 거의 대부분 선물용이었다. 본인이 마시기보다는 귀한 분에게 중요한 시기에 주는 그런 고급 선물용품으로 자리매김한 것이었다.큰병의 인삼주경우 한국에서 가져온 인삼 2채를(1채가 6년근 인삼 5뿌리 정도) 베트남의 40도짜리 전통주로 담궈서 만든다. 인삼은 한국 술에 담으면 더운 베트남의 기후 때문에 상하기 쉽다. 요즘에는 교민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만 ‘루머이(LuaMoi)’같은 좋은 술이 베트남에도 많다.
우리 상품을 이왕 팔려면 최고의 제품을 팔아야....
최근 여러 기관에서 다양한 한국 기업 제품을 소개하는 행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활동이다. 그런데 몇몇 기관에서 개최하는 시장개척단, 판촉전 등의 행사를 가보면 순도 낮고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품들이 꽤나 보인다. 해외에 나가 시장을 개척하는 행위는 일종의 국위선양 활동인데 좋지 않은 제품을 소개하면 오히려 국가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아 두렵다. 외국에 수출하는 제품, 특히 건강식품류는 철저히 선별된 제품으로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9년 여수에서 개최된 제18차 세계한상대회 때 이야기다. 내가 세계한상대회 대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였다. 나는 당시 관련 지자체장에게 “수출품목은 최대한 선별해야 한다. 관계로 인해서 수출지원 업체를 선정하지 말아 달라. 세계 여러 바이어들이 참석하는 행사에는 당당하고 떳떳하고 자신있는 물건들이 나가야하는 것 아니냐. 특히 자격도 미달되고 품질도 미달되는 상품들은 절대 수출하면 안 된다. 이건 시장개척이 아니라 시장을 망가뜨리는 것이다.”라고 강변한 적이 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이다. 문제는 몇몇의 미선정업체가 관련 정부나 기관에 민원을 넣는다는 것이다. 민원에 민감한 기관으로서는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엄격한 기준, 즉 룰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홍삼의 경우 성분분석표, 증명서(Certificate),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건강식품 인증허가증 등의 자료를 갖춘 업체만 참여토록 하는 것이다.
K-MARKET의 미래는 온오프라인 통합에 있다
우리가 공격적으로 신규매장 오픈을 했던 또 다른 이유는 추후 이 매장들을 온오프라인 통합의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K-MARKET의 장점은 많은 매장을 갖고 있다는데 있는데 이를 온라인의 장점과 결합시켜 온오프라인매장의 장단점을 서로 해소하자는 것이다. 온라인의 주요 장점은 편리성과 상품의 다양성 즉, 오프라인 매장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물건을 클릭 몇 번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 매장의 규모에 따라 구비할 수 있는 제품군이 제한적이기 마련인데 온라인은 그렇지 않다. 현재 K-MARKET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옷, 휴대폰, 소형 가전, 중고 자동차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지 않는 상품들도 다수 판매하고 있다. 반면 온라인 비즈니스의 문제점은 거점별 물류센타운영과 물류배송에 대한 리스크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다른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베트남의 경우도 대부분의 주문은 COD(Cash on Delivery)로 진행되고 있다. 다시 말해 결제 전 주문을 하고 물건이 도착하면 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단순 변심 등의 이유로 지불을 거부하는 경우가 상당하고 이를 반품 받기 위해 두 배의 물류비가 든다. 베트남 내 홈쇼핑 사업이 철수하거나 철수를 준비하며 제자리걸음인 이유도 이처럼 물류비 손실과 중간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또한 배송시간에 대한 과도한 경쟁도 문제이다. 한국의 경우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에 배송을 해 주는 방식이 많은데 이를 위해 작업자들이 야간 선별작업을 해야 하고 급하게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이나 배송기사들의 과로와 건강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라이더들과 관련된 안타까운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나 역시 왠지 마음이 편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 K-MARKET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거점으로 활용하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보통 물류센터에서 각 매장으로 하루 2~3회씩 출고하는데 이를 활용하여 고객들이 직접 가까운 매장에 방문하여 온라인으로 주문한 제품을 수령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희망할 경우 자택에서 배송을 받아도 된다. 하지만 베트남 택배사가 저녁 6시~7시까지만 배송이 가능한 반면 K-MARKET은 밤12시까지 영업을 한다. 고객이 다음날 급히 필요한 물건일 경우 밤12시 전까지 언제든지 매장에서 물건을 찾아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고객의 입장에서 더 편한 선택일 수도 있고, 이렇게 되면 물류비용 부담이 줄어 경쟁력은 강화된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건을 전달받기가 편해진다는 효율적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반품에 있어서도 K-MARKET매장에서 물건을 열어 확인해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매장에서 바로 반품처리를 하면 되는 것이다. 별도의 배송직원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 베트남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K-MARKET은 매장 확장에 다시 박차를 가할 것이며 매장을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온오프라인 통합도 본격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코로나라는 복병
2020년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났다. 일반 소비자들이 보았을 때 K-MARKET은 필수업종으로 분류되어 여전히 영업을 할 수 있고 오히려 소비자가 늘어서 코로나 덕을 봤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먼저 많은 교민들이 코로나로 베트남을 떠났고, 2019년 430만명이 방문하던 한국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겼고 식당들의 영업중단으로 B2B 식자재 매출이 중단되었다. 우리 K-MARKET은 B2B 사업이 당사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베트남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한국식품은 상당부분 K-MARKET에서 납품하는데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봉쇄가 이어지면서 B2B 사업의 상당부분이 중단되어 버렸다. 뿐만아니라 Redsun, Golden Gate와 같은 베트남 현지 대형 F&B그룹에도 우리의 큰 거래처이지만 코로나로 납품이 중단되었다. B2B 사업 손실로 많은 적자가 발생했고 매장 근무자중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매장이 전직원과 함께 2주간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황 등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속에서 회사의 영업이익이 나빠지자 많은 직원들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단이 필요했다. K-MARKET은 모든 매장이 직영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는 영업에 어려움을 겪는 직영매장의 철수를 결정했다. 철수하기로 결정된 매장 대부분은 규모가 큰 매장들이라 투자비용이 많이 들었고,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게 꾸며진 매장들이라 철수를 하게 되면 투자한 비용 모두를 버리게 되는 큰 손실이 따를 수밖에 없었 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100여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라 몇몇 매장 정리에 속 쓰려 할 여유가 없었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고 나니 K-MARKET의 운영은 단숨에 정상화되었고 손익 실적은 오히려 그전보다 좋아지는 수치로 나타났다. 생각만 바꾸면 아주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아깝다고 버리지 못하면 나중에 더 큰 화를 범하게 된다. K-MARKET은 물류센터를 비롯해 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지만 무차입경영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하노이 물류센터 건립 당시 베트남에 보내야 할 투자자금 외환송금의 법적처리가 원활하지 않아 불가피하게 일시적으로 차입했던 일부 차입금도 코로나 위기임에도 올해 9월 말 모두 상환하였다.
K-MARKET의 CSR
CSR은 베트남 진출 한국기업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해외진출 한국기업들은 외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지 않은가. 내가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들을 상대로 이익을 내든 베트남 국민들을 상대로 이익을 내든 나는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내 기업의 이미지가 아니라 한국기업이 베트남에 얼마나 기여를 하는지에 대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K-MARKET은 예전부터 CSR활동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더욱 적극적으로 했다. 도와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CSR활동에는 베트남을 위해 해야하는 CSR이 있고, 교민들을 위해 해야하는 CSR이 있다. 베트남을 위한 CSR활동으로는 2013년부터 베트남의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전 임직원이 고아원과 복지원에 매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으며 베트남 농가가 코로나로 인한 수출길이 막히자 베트남 농가의 농작물을 구입해 원가로 판매하는 “K-MARKET & 베트남 농가 상생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또한 지난 2020년 4월 베트남 조국전선중앙위원회를 방문하여 힘든 시기를 조속히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현금 10만 US$와 구호물품 7만 US$를 기부하였다. 이외에 베트남 중부지방 홍수 피해 이재민을 위한 기금 모금, 굿네이버스와 농가 지원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농가지원사업을 지원하였고, 코로나 초기 코로나 발병자 1명만 발생해도 해당지역 전체가 격리되었을 때 격리지역에 생수와 마스크, 손소독제, 식품 등을 많이 후원하였고, 교민들을 위해서는 2021년 8월 코로나 확산으로 거의 공포 분위기에 휩싸 인 호치민 교민들의 백신 조달과 확진자 구호 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10만US$를 호치민 한인회에 기부하여 교민들이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많은 교민들 중에 여행업 종사자들은 코로나로 생계가 어려울 정도의 직격탄을 맞아서 그들에게 코로나 극복 후원금을 전달하였다. 베트남 축구국가대표 한국 코치진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4년간 3명에게 주택을 지원하였고, 코로나 입국자들의 격리 시 격리 교민 구호물품 지원 등의 수많은 기부 활동에 참여하였다.
나는 청년시절 “인류에의 봉사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사업이다.”라는 말을 접하고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반드시 성공을 하면 세상을 밝히는 작은 힘이 되겠다는 생각을 마음 깊이 간직했고, 지금 그 작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CSR활동은 기업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K-MARKET은 베트남에서 1등 기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에서 제일 사랑받는 일류기업이 되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