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 수상자

오세영 코라오 그룹 회장 


오세영 코라오 그룹 회장은 라오스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 생산 및 제조, 은행을 기반으로 하는 금융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언론과 건설, 물류, 리조트사업, 가구판매 등 32개 계열사를 둔 라오스 민간기업 규모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라오스의 현대그룹’ 또는 ‘라오스의 삼성’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현재 코라오 그룹은 라오스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인근 국가 및 전 세계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27세 대한민국 청년 오세영, 꿈을 찾아 해외로 도전

그는 동해시에 태어나 성균관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뒤 코오롱상사에 근무하면서 해외창업에 관심을 가졌다. 학벌과 혈연, 지연이 만연했던 당시 대기업의 임원들은 대부분 SKY출신이라는 현실을 보면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자신이 임원으로 남아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코오롱상사 근무 시절 베트남 봉제품 수출 및 중고차, 가전제품 등 다양한 상품의 수출 및 현지 판매를 통하여 노하우를 터득하였고 미지의 국가에 대한 열망으로 그는 해외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갔다 . 결국 대기업 입사 약 3년 후 오세영 회장은 열정과 도전정신 만을 무기로 27세의 젊은 나이에 해외 창업에 도전하게 된다. 


베트남에서 사업 시작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반복

그는 1990년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고 베트남으로 건너가 봉제공장을 시작하였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이 나라에서 가장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주문을 걸었다. 하지만 첫 사업에서 오는 경험의 부족, 현지 사정에 대한 문외한인 이유로 인하여 그는 사업 개시 후 2년도채 되지 않아 현지 파트너에게 사기를 당하며 무일푼으로 남게 된다. 도전 후에 돌아온 실패였다.

하지만 도전과 열정을 간직한 오세영 회장은 다시 힘을 내었다. 당시 기간산업과 제조업이 취약해 자체 생산품이 거의 없었던 베트남은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었기에 소비대비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였다. 그는 무역과 판매에 대한 그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한국산 중고 오토바이, 자동차, 건설 플렌트, 전자 기기등 다양한 상품에 대한 무역거래와 현지 판매를 진행하였다. 바이어들은 한국말 잘하는 그를 쉴 새 없이 찾아왔다. 중고 사업을 시작 한 후 그의 별칭이 '중고왕' 이였던 것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싸리 빗자루에서 헬리콥터까지 고객이 원하는 물건이라면 취급하지 않는 상품이 없었다. 그러나 실패 뒤에 찾아온 두 번째 성공이였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베트남 정부는 1996년 아세안 연합(ASEAN)에 가입하면서 1997년부터 한국산 중고 물품들을 전면적으로 수입 금지하였고 이에 오세영 회장의 중고 사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실패 뒤에 찾아온 성공이였기에 달콤했고 그도 모르게 안일했다. 성공의 크기가 컸고 정부의 정책이 사업에 치명적일 것이라는 것을 미리 가늠하지 못했다. 실패 후 성공 다음에 찾아온 더 큰 실패 였고 이것은 또 다시 그에게서 모든 것을 가져갔다. 두 번의 실패를 안고서 오세영 회장은 라오스로 건너간다.


주머니 속 단돈 3,000달러(약 330만원), 라오스에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 

[1997년의 라오스 풍경 , 출처 : flickr.com(miyamiya miyamiya)]


1997년의 그가 바라본 라오스는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당시 라오스의 인당 GDP는 미화 300달러 (약 33만원) 수준으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이제 막 경제발전의 태동기에 있었고 한국산 중고차가 10대가 채 안되는 불모지의 땅이였다. 실패에 대한 자책과 절망을 딛고 오세영 회장은 다시금 용기를 내어 중고차 수입·판매를 시작했다. 다시 힘을 낸 그에게는 많은 것들이 부족했던 당시의 라오스가 많은 것을 팔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보여졌다. 베트남에서 경험과 그 만의 노하우를 다시금 활용할 수 있는, 이미 한 번 해본 사업이였기에 그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실패 뒤에 물러서지 않은 그의 열정과 도전 끝에 결국 라오스에서의 사업은 빛을 보게 되었다. 당시 라오스는 인도차이나반도 국가 중에 총 인구수가 500만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였기에 글로벌 기업을 비롯하여 일반 기업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곳 이였다. 하지만 오세영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베트남 같은 거대 시장은 글로벌·다국적 기업이 경쟁자다. 경쟁의 강도가 심하기에 돌아오는 이익도 박하다. 그는 500만명의 라오스 시장이 중소기업에게는 결코 작지 않다고 판단하였으며 작은 시장에서도 1등을 하거나 시장을 독점하면 상당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코라오 그룹 로고]


그는 라오스에서 Korea와 Laos의 앞글자를 합쳐 만든 KOLAO를 사명으로 만들어 '코라오 디벨로핑 컴퍼니'를 창업, 중고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즉, 중고차를 분해해 부품으로 수입한 뒤, 성능과 안전에 중요한 부품을 교체하여 재조립하고 코라오(KOLAO)라는 브랜드로 고객에게 판매하는 사업이였다.

코라오 그룹이 제조, 판매하고 있는 신차와 중고 자동차를 포함할 경우, 2015년의 기준으로 라오스 자동차 시장에서 승용차 77%, 트럭 9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2003년부터 라오스인의 체형에 맞도록 자체 연구, 개발한 코라오 오토바이가 라오스 오토바이 시장의 40 %를 점유하고 있다.

당시 라오스 자동차 시장은 한국산 자동차가 5대 밖에 없었고 일본 중고차의 비중이 9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후발 주자였던 코라오의 중고차가 경이적인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라오스 국민의 안전과 신뢰가 최우선

라오스 도로교통법도 차량 우측통행으로 한국과 같은 좌측핸들 차량에 맞도록 제정되어 있었지만, 먼저 진출한 일본 중고차가 우측핸들이었기 때문에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코라오 그룹은 라오스 정부와 국민들을 상대로 좌측 핸들인 한국산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라오스 국민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고 또한 발생하는 수익의 대부분을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뿐만 아니라 지방까지 AS 센터를 여는데 투자하여 한국차를 구매하면 안전하고 AS도 문제가 없다는 믿음을 지속적으로 심어 주었다.

 

고객 만족을 위한 과감한 AS투자 

그가 중고차 판매할 때 가장 심혈을 쏟은 분야는 보증수리 개념을 도입하여 고장난 차를 하루를 넘기지 않고 정비, 출고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직원 교육 및 홍보에 집중했다. 반면 당시 일본 중고차의 경우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만 AS센터를 운영했기 때문에 차량을 맡기면 정비 완료까지 3일에서 최고 일주일 이상이 소요됐다. 그러나 코라오는 지방까지 AS센터를 확대하고 긴급출동 서비스를 시행했기 때문에 차량의 안전성, 정부 정책에 대한 준수, AS에 대한 보장에 있어서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라오스 시장점유율을 높여갈 수 있었다.


[1999년 라오스 사바나켓 중고차 공장 / AS 현장 지도 / 폰시누안 AS 센터]


오 회장이 A/S서비스에 중점은 줬던 것은 ‘GDP경영론’이다. GDP 지표는 국가의 산업들이 어느 단계에 진입했는지를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이다. 오 회장은 라오스 GDP 지표에 맞는 필요한 제품을 한국 등에서 가져와 차별화된 브랜드와 서비스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개발도상국에서 경쟁자들이 적기 때문에 마음껏 GDP경영을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할부금융서비스 도입, 자동차 판매 시너지 효과 창출

코라오 그룹이 자동차 분야에서 경이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2009년도에 철저한 시장분석을 바탕으로 인도차이나은행을 설립, 할부금융서비스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라오스 국민들에게 한국의 선진 금융할부 시스템을 도입하여 차량 구입을 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였고 당시 은행 예금에 대한 불안감으로 현금을 직접 보관하고 있던 정세를 감안하여 오세영 회장은 라오스 정부와 함께 라오스 국민들의 저축장려운동을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국민들에게는 안전한 재산의 운영을, 기업에게는 사업을 위한 대출 진작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가 전반의 금융 인프라 개선에 기여하였다. 


[라오스 정부 & 인도차이나뱅크 저축장려운동 CF 중]


[인도차이나뱅크 TV CF]


인도차이나은행은 설립, 4년 만에 자산과 수신, 여신 부문에서 민간은행 1위를 차지했으며 코라오 자동차 판매의 시너지효과를 창출하였고 현재까지도 라오스의 할부금융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인도차이나은행의 지분 78%를 보유, 최대주주인 오 회장은 LVMC홀딩스를 지주회사로 세워서 700만 재외동포 중 한상기업 최초로 2010년 한국거래소 KOSPI 시장에 상장했다. 오 회장은 라오스를 성공 기반으로 인근 국가인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파키스탄 등지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 ‘DAEHAN'으로 라오스를 자동차생산국 반열에 올려

그의 신조는 ‘실패를 두려워 말라’다. 라오스 정부의 중고차 금지정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자동차 제조공장을 설립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오세영 회장이 미리 준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미 베트남에서 겪었던 정부 정책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사업의 실패는 필연적이다라는 실패의 경험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 후 물러선다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다시 도전한다면 그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 최소 3번의 기회를 자신에게 주어라'는 그의 얘기를 몸소 증명한 것이다. 

[대한자동차 로고]


[라오스 DAEHAN 트럭 생산 공장]


[대한 트럭 라인업]


그는 가성비가 높은 자동차를 공급하기 위해 ‘대한(DAEHAN)'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공장을 설립 후 한국, 중국, 태국 등 각지의 경쟁력 있는 부품을 수입하여 자동차를 조립, 판매했다. 대한트럭의 공장을 준공한 것을 계기로 라오스는 자동차생산국 반열에 올랐다. 비단 사업의 확장 뿐만 아니라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라오스 라는 국가를 세계 자동차생산국 중 하나로 격상 시키는 사건이였다.

코라오가 생산한 1톤 픽업 트럭은 2013년 출시 후 3년 만에 시장 점유율 20.3%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독식하던 라오스 픽업 트럭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이유는 가격이 30~40%저렴한데다 차별화된 A/S망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라오스 국민들은 한국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트럭을 중고차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며 대한트럭의 주력인 1톤 트럭시장 점유율은 90% 이상을 상회했다.

또한 아세안 통합에 따른 아세안 국가들의 관세철폐로 일본차 대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각 국가별로 자동차 조립공장을 신축하고 직접 생산 및 판매함으로써 국가별 고유의 경쟁력을 확보하였고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4개 국가 모두에 자동차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전 세계 유일한 회사가 되었다.

고객편의에 맞춰 맞춤서비스로 승부

오 회장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려면 끝없이 시장 조사를 한다. 그는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현지의 소비 형태를 분석하고 시장을 먼저 진출해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 나라가 발전할 때 물건을 팔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그는 여행하듯 개발도상국을 찾아가서 시장을 구경하면서 무슨 사업을 할 것인지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코라오 그룹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판매 이전에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판매 이후의 사후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는 철두철미한 맞춤서비스를 근간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예컨대 자동차, 금융, 물류의 3가지 축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코라오 그룹은 경쟁사들이 등한시 하는 AS센터에 대해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A/S센터 내에는 카페, 미용실, 실시간 수리영상 등을 보여주는 CCTV등을 설치하는 등 고객편의 공간에 만드는 데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보다는 미래가치에 투자하는 것이 그가 추진하는 글로벌 경영의 대표적인 예이다.

[라오스 비엔티안 위치, 폰시누안 AS 센터]


이밖에 영국식민지였던 파키스탄에 자동차 판매를 추진하기 위해 우측 핸들 트럭을 개발했다. 또 베트남에 판매하는 트럭은 승객 공간을 최소화하는 대신, 짐 싣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등 차별화했다. 이는 자동차를 넘어 금융 분야에서도 맞춤서비스를 실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인도차이나뱅크를 설립함에 있어서 기존 은행들의 느린 업무처리(계좌 개설에만 2~3시간 소요)를 타파하고 10분 이내로 단축시켰다. 은행에 호텔식 인테리어를 도입해 쾌적한 공간을 고객들에게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라오스 정부와 함께 국민들을 대상으로 저축 장려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 차별화에 힘입어 라오스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하면서 설립 3년 만에 민간은행 1위로 올라섰다. 오 회장은 “현지 역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그 나라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팔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2001년부터 2년간 중고차 사업이 정체가 되어 위기감을 느꼈고 라오스를 떠날 생각까지도 했지만, 맞춤서비스를 통해 라오스 국민이 인정하는 브랜드를 키워보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추진했던 브랜드 경영이 회사를 한단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인도차이나뱅크]

 

현지 중소상인에 피해주는 사업은 하지 않는다

코라오 그룹의 글로벌 경영 원칙은 “현지의 중소상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며 소매점과 요식업에는 진출하지 않는다. 인도차이나반도 어느 국가를 가더라도 영세 상인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업종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동네 마트(소매점)와 식당이다.

한국 및 태국, 일본 유수의 관련 기업들이 라오스 현지 파트너를 제안하며 오 회장에게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지만 소상인, 영세 상인들과 관련된 사업에 있어서는 과감히 거절하고 있다.

같은 맥락의 한 예로써, 오세영 회장이 라오스 정부의 컴퓨터 입찰 현장에 방문하였을 때, 수 많은 라오스 청년들이 입찰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바로 컴퓨터 입찰사업을 중단시켰다. 당시에 이미 대기업이였던 KOLAO가 정부입찰에서 경쟁하게 된다면 라오스 젊은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그는 라오스 젊은 청년들이 도전하는 길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망설임 없이 입찰 참여를 철회하였다.


준법경영을 반드시 실천하고, 정부 관련 이권사업에 개입하지 말라

짧은 시간에 고속성장한 코라오 그룹은 라오스 경쟁기업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한 예로 2002년에는 경쟁 기업의 투서로 인해 한해 세무조사를 비롯한 각종 조사를 2년여에 걸쳐 30여 차례 받은 적이 있다. 특히 고강도 세무조사로 인해 정상적인 사업운영이 불가할 뿐 아니라 사업이 정체되었고 신규 채용을 할 수 있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고강도 세무사찰에서도 코라오 그룹이 원칙을 바탕으로 투명경영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라오스 정부로부터 모범 납세기업 또는 준법우수기업으로 표창을 받았다. 이에 따라 코라오 그룹은 라오스 국민들로 부터 모범적인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매출도 급신장했다.


[라오스 대통령, 국무총리로부터 수상한 경제발전 기여/사회환원/최우수 모범기업에 대한 훈장 및 표창장 중 일부 발췌]

 

평범한 사람들에게 비범한 일을 하게 한다


[2016 성균관대 초청강연/ 2016 제 15차 세계한상대회 청년 Go together!/ 2019 MBN Y포럼 경제영웅 강연/ 2014 아세안 정상회의 CEO 서밋 강연]

 

인도차이나반도 어느 국가를 가더라도 한국 기업인의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재를 찾기도 육성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 역시도 같은 상황을 겪었다.

회사 경영과 의사결정상에 필수 요소인 기업의 현지화와 직원 양성의 두 가지 목적을 이루어내기 위한 시스템과 프로세스 정립이 반드시 필요했다. 결국 오세영 회장은 라오스 직원들의 업무와 역량을 감안하여 그룹핑을 하고 직원들이 상호 정보교환 및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라오커뮤니티’라는 사내 소통 시스템을 도입했다. 코라오 인재의 구성을 보면 한국 사람 1명에 라오스인 100명으로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집단지성 경영체제’를 구축하여 상호 보완과 견제를 할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즉, 한국인 매니저 뿐만 아니라 라오스 현지인을 함께 참여시켜 서로 소통하며 미래의 관리자로 육성하면서 성공적인 경영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정보공유 문화를 시스템화 한 것이다.

그러나 현지화를 해서 어느 국가에서의 성공했더라도 반드시 다른 나라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모두 국가마다 가지고 있는 시장의 성격이 다르고 국민의 정서와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현지의 문화와 국민성을 이해하고 접목시키는 현지화는 경쟁력 확보와 회사 영속성의 기반이 된다. 어디까지가 현지화에 성공하려면 제도화하여 그룹 내에 정착시켜야만 가능하다고 본다.

[2009 인도차이나뱅크 출범 / 2012 코라오 그룹 체육대회 / 2013 대한트럭 1호 출시 모델]


코라오 그룹 내 부서에서 작성하는 모든 결재 문서에는 한국인 관리자와 현지인 관리자가 동시에 서명을 해야지만 효력이 발생하는 Co-Signer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서구 식민통치 역사의 영향도 있겠지만 인도차이나반도 국가의 현지인들은 책임에 대해 기피하는 성향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은 회사의 의사결정에 있어서 보다 신중한 검토와 판단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코라오 그룹 오세영 회장은 기업의 경쟁력과 영속성은 이러한 현지인의 경영참여는 물론, 이들의 역량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조건없는 이익의 사회환원

[시계방향으로 2007 미스터 라오 후원 / 2007 코라오배 태권도 대회 개최 후원 / 2009 컴퓨터 기증 / 2007 라오스 국무총리 훈장 수여 기사 / 2003 장학금 기증 /2006 장학금 기증 / 2002 초등학교 설립 기증]


오세영 회장의 사회 환원에 대한 얘기는 끝이 없다. 투명경영을 통한 깨끗한 회사에는 부조리가 있을 수 없으며 회사가 만들어낸 이익은 국민에게서 온 것이고 그 일부를 사회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오 회장은 어린이 문맹퇴치를 위한 야학 운영, 학교 설립, 군인 성금 전달, 라오스 정부에 기증등 다양한 방면의 사회 환원을 진행해 오고 있다.

교육 지원 사업으로 2002년부터 지금까지 지원금액 약 200만 달러를 들여 교육관련 정부표창 50여 개를 수상했다. 그는 외국인 최초로 라오스 국가장학재단(위원장 : 부총리급) 고문 역임 중이며 매년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코라오 농장사업 각 지역에 500명 규모의 지역사회 학교를 설립하고 있다.

[시계방향으로 2011 홍수구해물품 지원/2013 라오스 청년연맹 후원/2006 장학금 기증/2012 지방학교 설립운영 지원]


또 라오스 청년연맹을 후원, 2007년부터 현재까지 교육, 체육, 마약퇴치 등에 250만 달러를 지원했고, 깨끗한 물 마시기 프로젝트(현재까지 지원금액 90만 달러),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시 초석 복원 사업 지원(지원금액 100만 달러), 의료지원 및 장애인 지원를 사업 (2010년부터 의료 및 장애인 지원사업 지원, 지원금액 120만 달러), 라오스 교민 정착 지원(2011년부터 100만 달러 기부, 교민 사회발전 지원 및 성공 경험 전수), 기타 수해, 재난, 코로나 사태 등에 다수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후원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코라오 그룹 노영우 이사는 공식적인 후원 외에도 익명으로 기부하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선행의 목적이 홍보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오세영 회장님의 의지가 강하여 드러나지 않는 기부 건들이 수 없이 많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오세영 코라오 그룹 회장은 2020년 10월 30일에 2020년 장보고 한상 대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2021년 4월 라오스 상공부 장관으로부터 최우수 납세 모범 기업상을 또 다시 수상 하는등 코라오 그룹의 준법 경영과 CSR 활동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끝>